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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공주·부여의 세계유산

by 히스토리 호호 2026. 1. 11.

충청남도 공주와 부여를 걷다 보면, 이곳이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한때 동아시아 문명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고대 왕국 백제의 심장부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낮은 산과 완만한 강,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품은 이 땅에는 1,400여 년 전 찬란했던 백제 후기 문화의 정수가 남아 있다. 오늘은 백제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공주·부여의 세계유산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백제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공주·부여의 세계유산

유네스코가 주목한 고대 왕국의 흔적

2015년, 공주와 부여의 주요 유적은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유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백제가 보여준 도시 계획 능력, 국제 교류, 왕실 문화, 불교 수용 과정이 인류 보편의 가치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공주·부여 세계유산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능산리 고분군을 중심으로 백제의 숨결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공산성, 자연과 권력이 만난 백제의 왕도 방어 체계

공주 공산성은 백제가 한성(서울)에서 밀려난 뒤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며 축조한 산성이다. 겉보기에는 비교적 소박한 성곽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백제의 뛰어난 지형 활용 능력과 정치적 판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산성은 금강을 감싸 안듯 자리 잡고 있다. 강을 천연 해자로 삼고, 낮은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두른 구조는 방어에 매우 유리했다. 이는 백제가 단순히 군사적 요충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수도 계획을 염두에 두고 왕도를 설계했음을 보여준다.

유네스코가 공산성을 높이 평가한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이 단일 시대의 유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백제 시기의 토성 위에 조선 시대 석성이 덧대어지며, 성곽 축조 기술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는 공산성이 오랜 세월 동안 지역의 중심 공간으로 기능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공산성 내부에서는 왕궁지와 관청, 생활 유적이 함께 확인된다. 이는 공산성이 단순한 군사 시설이 아니라 정치·행정·생활이 공존한 왕도 공간이었음을 말해준다. 성곽 위에 서서 금강을 내려다보면, 왜 백제가 이곳을 수도로 선택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이 들려주는 국제 왕국 백제의 얼굴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 시기 백제 왕과 왕족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백제 왕실 장례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곳이 세계유산으로서 특별한 가치를 갖는 이유는 단연 무령왕릉의 존재 때문이다.

1971년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백제 왕릉으로, 고대사 연구에서 매우 드문 사례다. 특히 무령왕과 왕비의 이름, 사망 연대가 정확히 기록된 묘지석이 함께 출토되면서 백제사의 연대가 명확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백제가 결코 고립된 나라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중국 남조에서 유입된 벽돌 묘제, 세련된 금제 관식, 장신구들은 백제가 국제 교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이를 백제식으로 재해석했음을 보여준다.

유네스코는 송산리 고분군을 통해 백제가 동아시아 문화권 속에서 개방적이고 세련된 왕실 문화를 형성한 국가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단순한 무덤의 집합이 아니라, 백제라는 나라의 외교력과 문화적 자신감을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불교 국가로 나아간 사비 백제의 선언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가 사비(부여)로 천도한 이후 조성된 왕실 묘역으로, 웅진 시대의 송산리 고분군과는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불교의 깊은 개입이다.

능산리 고분군 인근에서는 왕릉과 함께 사찰 유적인 능산리 절터가 발견되었다. 이는 백제에서 불교가 단순한 종교를 넘어 왕권을 뒷받침하는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왕의 죽음 이후에도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 사후를 기원했던 것이다.

사비 시기의 백제는 도시 전체를 계획적으로 설계했다. 능산리 고분군은 정림사지, 나성, 궁성 유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완성된 도성 구조를 이룬다. 유네스코는 이를 통해 백제가 종교·정치·도시 계획을 통합적으로 운영한 고대 국가였음을 높이 평가했다.

능산리 고분군은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공간 구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는 백제 특유의 미의식, 즉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가치가 장례 문화에도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공주와 부여의 세계유산은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유적들은 한 왕국이 위기 속에서 수도를 옮기고, 외교와 문화를 통해 재도약하며, 종교를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역사적 과정 전체를 공간으로 보여주는 드문 사례다.

공산성의 성벽을 걷고, 송산리 고분군의 고요한 능선을 바라보고, 능산리 고분군의 숲길을 지나며 우리는 묻게 된다. 백제는 어떻게 멸망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를 남긴 나라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바로 이 세계유산 속에 있다. 공주·부여의 유적은 과거를 박제한 공간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역사와 대화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장소다. 그렇기에 이곳은 여행지이자, 배움의 공간이며, 동시에 우리 문화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