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역사를 떠올리면 화려한 금제 장신구나 고분 속 유물이 먼저 생각나기 쉽다. 하지만 한 나라의 진짜 실력은 눈에 보이는 보물보다 도시를 어떻게 만들고 운영했는가에서 드러난다. 오늘은 충청남도 부여에 남아 있는 사비 시대 유적들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백제의 수도는 어떻게 설계되었을까?
538년, 백제는 수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긴다. 이는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국가 체제를 새롭게 정비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오늘날 부여에 남아 있는 정림사지, 나성, 관북리 유적은 당시 사비 도성이 어떤 원리로 설계되었는지를 알려주는 핵심 단서다. 이 글에서는 이 유적들을 따라 걸으며, “백제의 수도는 어떻게 설계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정림사지, 백제 수도의 중심에 놓인 국가 사찰
사비 도성을 이해하는 첫 출발점은 정림사지다. 정림사지는 사비 시대 백제의 중심 사찰로, 도성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불교가 단순한 종교를 넘어, 국가 이념이자 통치 질서의 한 축이었음을 보여준다.
정림사지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에 위치한 5층 석탑이다. 이 탑은 장식이 거의 없는 단순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비례와 균형이 뛰어나 백제 특유의 미의식을 잘 드러낸다. 화려함을 앞세우기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통해 질서를 표현하는 방식은, 백제 도시 설계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정림사지는 궁성과 가까운 위치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이는 왕권과 불교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왕은 불법(佛法)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고, 사찰은 백성의 안녕과 국가의 안정을 기원하는 공간이었다. 다시 말해 정림사지는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사비 도성의 정신적 중심축이었다.
정림사지를 중심으로 도성의 주요 시설이 배치되었다는 점은, 백제의 수도가 우연히 형성된 공간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 아래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
나성, 자연을 활용한 백제식 수도 방어 시스템
도시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방어다. 사비 도성의 방어 체계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나성을 살펴봐야 한다. 나성은 사비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외곽 성곽으로, 오늘날에도 부여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나성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이다. 백제는 인위적으로 거대한 성벽을 쌓기보다, 산 능선과 강, 평야의 경계를 성곽선으로 삼았다. 이는 군사적 효율성뿐만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중시하는 백제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나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을 넘어, 사비 도성의 공간적 경계를 설정하는 역할을 했다. 성 안쪽은 왕궁과 사찰, 관청이 자리한 정치·종교의 중심지였고, 성 바깥은 생활과 생산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구조는 사비 도성이 기능별로 구분된 계획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유네스코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평가할 때 나성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성은 백제가 자연 환경을 읽고, 이를 도시 구조에 능동적으로 반영한 고대 도시 계획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관북리 유적, 왕궁과 행정이 숨 쉬던 사비의 심장부
정림사지가 정신적 중심이었다면, 관북리 유적은 사비 도성의 실질적인 행정·정치 중심지였다. 관북리 유적에서는 궁궐 건물터, 행정 시설, 도로 흔적 등이 확인되었으며, 이를 통해 사비 도성이 체계적으로 설계된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도로와 건물의 배치다. 관북리 유적에서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도로망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무질서하게 성장한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된 수도였다는 강력한 증거다. 왕궁과 관청, 사찰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는 효율적인 행정 운영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관북리 유적은 부소산성과 연결되며, 유사시 왕과 관료들이 산성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사비 도성이 평상시에는 개방적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방어 체제로 전환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음을 보여준다.
관북리 유적을 걷다 보면, 백제의 수도가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통치와 방어, 종교와 행정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복합 시스템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정림사지, 나성, 관북리 유적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백제는 왜 사비에 이런 수도를 만들었을까? 그 답은 백제가 추구했던 국가의 모습 속에 있다.
사비 도성은 화려함보다 질서와 균형을, 거대함보다 조화를 선택한 도시였다. 불교를 중심으로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고, 자연을 활용한 방어 체계를 구축하며, 계획적인 행정 도시를 운영했다. 이는 백제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나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국가를 꿈꾸었던 문명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부여에 남아 있는 사비 시대 유적은 대부분 폐허에 가깝다. 하지만 그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백제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도시를 만들고자 했는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백제의 수도는 어떻게 설계되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충남 부여의 땅 위에 조용히 남아 있다.